남중국해의 격랑: 중국-필리핀 해상 영유권 분쟁의 다층적 분석과 미래 전망

 

남중국해-영유권-분쟁

1. 서론: 지정학적 단층선의 활성화

남중국해(South China Sea)는 21세기 인도-태평양 지역의 가장 뜨거운 화약고이자, 미·중 패권 경쟁이 물리적 실체로 드러나는 최전선이다. 특히 중국과 필리핀 간의 해상 영유권 분쟁은 단순한 도서 영유권 다툼이나 자원 확보 경쟁을 넘어, 국제법에 기반한 해양 질서(Rules-based Order)의 지속 가능성과 강대국의 회색지대(Gray Zone) 강압 전술, 그리고 동맹의 신뢰성을 시험하는 복합적인 안보 딜레마로 진화하였다.

이 해역은 전 세계 해상 물동량의 약 30%인 연간 3조 3,600억 달러 규모의 무역이 통과하는 글로벌 경제의 대동맥이며, 중국 에너지 수입의 80%가 지나는 전략적 요충지이다. 또한 해저에는 약 110억 배럴의 석유와 190조 입방피트의 천연가스가 매장된 것으로 추정되어, 에너지 안보 측면에서도 양보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다.

2022년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Ferdinand Marcos Jr.) 필리핀 대통령의 취임은 이 분쟁의 양상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전임 로드리고 두테르테(Rodrigo Duterte) 행정부의 친중 유화 정책에서 탈피하여, 마르코스 정부는 2016년 상설중재재판소(PCA) 판결을 외교 정책의 기치로 내걸고 미국과의 동맹을 강화하는 '적극적 투명성(Assertive Transparency)' 전략을 채택했다. 이에 중국은 해경(CCG)과 해상 민병대(Maritime Militia)를 동원한 물리적 압박 수위를 전례 없이 높였고, 2023년부터 2026년 초에 이르는 현재까지 남중국해는 물대포, 레이저 조사, 고의적 충돌(Ramming)이 난무하는 준(準)전시 상태에 돌입해 있다.

본 보고서는 중국과 필리핀 간의 남중국해 분쟁을 역사적 기원부터 2026년 1월 현재의 최신 군사·외교적 대치 상황까지 포괄적으로 분석한다. 특히 세컨드 토마스 암초(Second Thomas Shoal)와 사비나 암초(Sabina Shoal)에서의 전술적 대치, 미국의 타이폰(Typhon) 미사일 배치로 인한 전략적 균형의 변화, 그리고 에너지 안보와 ASEAN 외교라는 다층적 변수들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며 위기를 증폭시키는지 심층적으로 규명하고자 한다.


2. 역사적 배경과 법적 쟁점의 구조화

2.1 중국의 '남해구단선'과 역사적 권리론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은 역사적 서사에 깊이 뿌리를 두고 있다. 중국은 기원전부터 중국인들이 남중국해를 발견하고 이용해왔다는 문헌적 기록을 바탕으로, 이 해역에 대한 '역사적 권리(Historic Rights)'를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이 지도상에 구체화된 것이 바로 '남해구단선(Nine-Dash Line)'이다.

1947년 중화민국 국민당 정부는 남중국해 해역에 U자 형태의 11개 단선을 그어 '남해제도위치도'를 발간했고, 1949년 수립된 중화인민공화국(PRC)은 이를 계승하여 1953년 통킹만 부근의 2개 선을 삭제한 9개 선으로 조정했다. 구단선은 남중국해 전체 면적의 약 90%를 포괄하며, 중국은 이 선 내에 위치한 스프래틀리 군도(Spratly Islands, 난사군도), 파라셀 군도(Paracel Islands, 시사군도), 스카버러 암초(Scarborough Shoal, 황옌다오) 등의 모든 도서와 그 주변 수역에 대한 주권 및 관할권을 주장한다.

중국의 입장은 UNCLOS(유엔해양법협약) 체제와 근본적인 긴장 관계에 있다. UNCLOS는 연안국에 200해리 배타적 경제수역(EEZ)을 부여하지만, 중국은 UNCLOS 가입국임에도 불구하고 협약 발효 이전부터 존재했던 역사적 권리가 협약보다 우선하거나 혹은 협약과 양립할 수 있다는 모호한 태도를 취해왔다.

2.2 필리핀의 입장과 2012년 스카버러 암초 사태

필리핀은 1982년 UNCLOS에 서명하고 1984년 비준한 당사국으로서, 협약에 규정된 200해리 EEZ와 대륙붕 권리를 주장한다. 필리핀은 중국의 구단선이 국제법적 근거가 없으며, 필리핀의 주권적 권리를 침해한다고 본다.

분쟁의 결정적 전환점은 2012년 스카버러 암초(Scarborough Shoal) 사태였다. 루손 섬에서 불과 120해리 떨어진 이 암초에서 필리핀 해군이 불법 조업 중인 중국 어선을 단속하려 하자, 중국 해감선이 개입하여 대치 상황이 발생했다. 미국의 중재로 양측이 철수하기로 합의했으나, 필리핀이 철수한 뒤 중국은 약속을 어기고 암초를 점거하여 실효 지배를 굳혔다. 이 사건은 필리핀에게 양자 협상의 한계를 절감하게 했고, 결국 2013년 1월 국제 중재 제소라는 법적 투쟁(Lawfare)으로 선회하는 계기가 되었다.

2.3 2016년 PCA 중재판정: 법적 패러다임의 전환

2016년 7월 12일, 헤이그의 상설중재재판소(PCA)는 필리핀의 손을 들어주는 역사적인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은 남중국해 분쟁의 법적 지형을 근본적으로 재편했다.

[표 1] 2016년 PCA 판결의 주요 쟁점별 분석

쟁점필리핀의 주장중재재판소의 판결 (Award)법적/전략적 함의
남해구단선국제법상 근거 없는 자의적 선이다.무효. 중국이 역사적으로 해당 수역을 배타적으로 통제했다는 증거가 없으며, UNCLOS 가입으로 역사적 권리는 소멸되었다.

중국 영유권 주장의 핵심 논리를 국제법적으로 파기함. 

지형물의 지위스프래틀리 군도의 지형물은 섬이 아닌 암석이다.암석(Rocks) 또는 간출지. 이투 아바(Itu Aba)를 포함한 어떤 지형물도 인간의 거주나 독자적 경제생활을 유지할 수 없으므로 EEZ를 생성할 수 없다.

중국이 점거한 지형물을 기점으로 200해리 EEZ를 주장할 수 없게 됨. 

인공섬 건설미스치프 암초 등에서의 건설은 불법이다.불법. 미스치프 암초 등은 만조 시 수몰되는 간출지로, 영유권의 대상이 될 수 없으며 필리핀의 대륙붕 위에 위치한다. 중국의 인공섬 건설은 필리핀 주권 침해다.

중국의 인공섬 군사 기지화가 국제법 위반임을 명시.

환경 파괴중국의 어업 및 건설이 환경을 파괴했다.유죄. 중국은 산호초 환경에 심각하고 회복 불가능한 피해를 입혔으며, 멸종 위기종 채취를 방조했다.

해양 환경 보호 의무 위반을 국가 책임으로 인정.

중국은 "수용하지 않고, 참여하지 않으며, 인정하지 않는다(Three Nos)"는 입장을 고수하며 판결을 "휴지 조각"으로 폄하했다. 그러나 이 판결은 필리핀과 미국, 그리고 서방 국가들에게 중국의 주장에 대항할 강력한 법적 명분(Moral High Ground)을 제공했다.


3. 회색지대 전술의 진화와 '적극적 투명성' 전략 (2023-2024)

마르코스 정부 출범 이후 필리핀은 중국의 강압 행위를 영상과 사진으로 기록하여 즉각 공개하는 '적극적 투명성(Assertive Transparency)' 전략을 채택했다. 이는 중국의 '회색지대 전술'을 백일하에 드러내어 국제적 비난을 유도하고 외교적 비용을 높이는 전략이다.

3.1 세컨드 토마스 암초(Ayungin Shoal)의 공성전

세컨드 토마스 암초는 필리핀의 대중국 저항의 상징이다. 1999년 필리핀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건조된 낡은 상륙함 'BRP 시에라 마드레(BRP Sierra Madre)'를 이곳에 고의로 좌초시켜 해병대원들을 주둔시키고 있다. 선체는 부식되어 붕괴 직전이며, 필리핀은 이를 유지보수하기 위해 정기적인 보급 작전(RORE)을 수행해야 한다.

중국은 이 보급 작전을 차단하여 필리핀 군이 스스로 철수하게 만드는 고사 작전을 펼쳐왔다.

  • 2023년의 교전: 2월 중국 해경선이 필리핀 해경선에 군용급 레이저(Military-grade Laser)를 조사하여 승조원들의 시력을 일시적으로 마비시켰다. 8월과 11월에는 고압 물대포를 발사하고 위험한 기동으로 보급선의 진로를 막았다.

  • 2024년 3월-6월의 격화: 2024년 들어 중국의 전술은 더욱 폭력적으로 변했다. 3월 5일과 23일, 중국 해경은 필리핀 보급선 'Unaizah May 4'호에 물대포를 집중 발사하여 선체 유리창을 깨뜨리고 승조원들에게 부상을 입혔다.

3.2 2024년 6월 17일: 유혈 사태와 전략적 분기점

2024년 6월 17일, 세컨드 토마스 암초 인근에서 발생한 충돌은 양국 관계를 벼랑 끝으로 몰고 갔다. 중국 해경 요원들이 고속단정(RHIB)을 타고 필리핀 해군 특수전 부대의 보급용 고무보트에 접근하여 도끼, 창, 칼 등 냉병기를 휘두르며 공격했다.

  • 사건의 전말: 중국 요원들은 필리핀 보트를 들이받고 강제로 승선하여 통신 장비와 내비게이션을 파괴하고, 필리핀 군인들이 소지한 무기를 탈취했다. 이 과정에서 필리핀 해군 병사 한 명이 엄지손가락이 절단되는 중상을 입었다.

  • 의미: 이는 단순한 차단을 넘어선 명백한 '무력 공격'에 근접한 행위였다. 그러나 필리핀과 미국은 이를 상호방위조약(MDT) 발동 요건인 '무력 공격(Armed Attack)'으로 규정하는 데 신중했다. 대신 이를 "불법적이고 공격적인 행위"로 규탄하며 확전을 관리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3.3 2024년 7월 잠정 합의의 체결과 취약성

6월 사건의 충격으로 양국은 외교적 해법을 모색했고, 2024년 7월 세컨드 토마스 암초 보급에 관한 '잠정 합의(Provisional Arrangement)'를 도출했다.

  • 합의의 내용: 구체적인 문안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인도적 물품(식량, 물)의 보급은 허용하되 건축 자재 반입은 제한한다는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사전 통보와 현장 검증"을 전제 조건으로 주장했으나, 필리핀은 이를 주권 포기로 간주하여 부인했다.

  • 이행과 한계: 합의 이후 2024년 7월 27일 첫 보급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고, 2025년 1월까지도 세컨드 토마스 암초에서의 보급은 비교적 안정적으로 진행되었다. 그러나 중국은 이 합의를 해당 암초에만 국한시키고, 다른 지역에서는 오히려 압박을 강화하는 '풍선 효과' 전략을 취했다.


4. 새로운 전선과 전술의 고도화 (2025년 하반기 - 2026년 초)

세컨드 토마스 암초가 소강상태에 접어들자, 중국은 사비나 암초(Escoda Shoal)와 스카버러 암초 등 다른 전선으로 압박을 확대했다.

4.1 사비나 암초(Escoda Shoal) 사태

사비나 암초는 필리핀 팔라완에서 불과 75해리 떨어져 있어 세컨드 토마스 암초로 가는 보급선의 집결지 역할을 한다. 중국이 이곳에 인공섬 건설을 위한 매립 징후를 보이자, 필리핀은 2024년 4월 최신형 대형 해경선 'BRP 테레사 마그바누아(BRP Teresa Magbanua)'를 파견하여 장기 주둔시켰다.

  • 중국의 봉쇄와 필리핀의 철수: 중국은 해경선과 민병대 선박을 대거 동원하여 사비나 암초를 겹겹이 포위하고 BRP 테레사 마그바누아에 대한 식량과 연료 보급을 완벽하게 차단했다. 결국 승조원들의 탈수 증세와 물자 고갈, 악천후로 인해 필리핀 선박은 5개월 만인 2024년 9월 14일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중국의 봉쇄 전술이 실질적인 영토 통제권 변경을 가져올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였다.

  • 2025년 12월 12일 물대포 공격: 2025년 12월 12일, 사비나 암초 인근에서 조업 중이던 필리핀 민간 어선 20여 척을 향해 중국 해경선이 물대포를 난사하고 고의적 충돌을 감행했다.

    • 피해: 어선 2척이 파손되고 어민 3명이 부상을 입었다. 중국 해경은 어선들의 닻줄을 절단하는 등 생계를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파괴 행위를 자행했다.

    • 대응: 필리핀은 외교적 항의(Demarche)를 제기했으나, 중국은 필리핀 어선들이 "조직적으로 도발했다"며 책임을 전가했다.

4.2 중국의 '몬스터 함정'과 전력 증강 데이터

중국은 남중국해에서의 우위를 확고히 하기 위해 압도적인 물량을 투입하고 있다. 필리핀 해군의 2025년 보고서에 따르면, 서필리핀해에서 관측된 중국 선박의 수는 급격히 증가했다.

[표 2] 서필리핀해 내 중국 선박 활동 추이 (2024-2025 비교)

선박 유형2024년 관측 수2025년 관측 수증감률전략적 함의
해경선 (CCG)79척161척+103.8%법 집행을 가장한 실질적 통제 강화 및 상시 주둔 확대
해군 함정 (PLAN)199척286척+43.7%단순한 후방 지원에서 전방 억제력 과시 및 미군 견제
총계278척447척+60.8%양적 압도(Saturation)를 통한 접근 거부(A2/AD)

출처: 필리핀 해군 2025년 평가 보고서 기반 재구성

특히 12,000톤급 해경선 'CCG 5901'호(일명 '몬스터')의 상시 배치는 필리핀의 소형 선박들에게 시각적·물리적 공포를 유발하는 심리전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4.3 2026년 1월: 미 해군의 개입과 구조 작전

2026년 1월 1일, 미 해군 보급함 USNS 세자르 차베스(USNS Cesar Chavez) 호가 남중국해에서 표류하던 필리핀 어민 3명을 구조했다. 이 사건은 단순한 인도적 구조를 넘어, 미 해군이 분쟁 수역에서 상시적으로 작전하고 있음을 중국에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 미군의 존재는 중국의 회색지대 전술이 '치명적 무력 사용'으로 넘어가는 것을 억제하는 안전판 역할을 하고 있다.


5. 군사 전략의 변화: 타이폰 시스템과 동맹의 현대화

5.1 타이폰(Typhon) 미사일 시스템의 전략적 충격

미국과 필리핀의 안보 협력 중 중국을 가장 예민하게 자극한 것은 미 육군의 중거리 미사일 시스템 '타이폰(Typhon, MRC)'의 루손 섬 배치이다.

  • 배치 경과: 2024년 4월 '살락닙(Salaknib)' 합동 훈련의 일환으로 필리핀 북부 루손에 임시 배치되었다. 당초 9월 철수 예정이었으나, 필리핀과 미국의 전략적 판단에 따라 2025년 말, 그리고 2026년 초까지도 철수하지 않고 기동 훈련을 지속하며 배치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 능력과 위협: 타이폰 시스템은 사거리 1,600km 이상의 토마호크 순항미사일과 SM-6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다. 루손 섬에서 발사 시 남중국해 내 중국 인공섬 기지는 물론, 중국 본토의 남동부 해안과 대만 해협까지 사정권에 둔다.

  • 중국의 반발: 중국은 이를 "쿠바 미사일 위기의 아시아판"으로 묘사하며,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행위"라고 강력히 반발했다. 중국 국방부는 이에 대응해 남중국해에서의 정보 감시 및 정찰(ISR) 활동을 대폭 강화했다.

  • 필리핀의 구매 의사: 2024년 12월, 필리핀 군 당국은 타이폰 시스템의 구매 의사를 공식화하며 이를 자국의 '종합적 군도 방어 개념(CADC)'의 핵심 자산으로 통합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5.2 필리핀의 '종합적 군도 방어 개념(CADC)'

마르코스 정부는 2024년 1월, 외부 위협을 자국 영해 밖에서 차단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종합적 군도 방어 개념(CADC)'을 발표했다.

  • 전력 현대화: 'Re-Horizon 3' 계획을 통해 향후 10년간 350억 달러를 투자하여 다목적 전투기, 잠수함, 미사일 시스템 등을 도입할 예정이다.

  • 동맹 네트워크 확장: 미국뿐만 아니라 일본, 호주와의 안보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일본-호주-필리핀 4개국 국방장관 회의(The Squad)가 정례화되었으며, 일본과는 '상호접근협정(RAA)'을 체결하여 자위대의 필리핀 내 훈련을 가능케 했다.

5.3 미-필 상호방위조약(MDT)의 진화

미국은 필리핀에 대한 방위 공약이 "철통같다(Ironclad)"고 반복해서 강조해왔다. 특히 2023년 양국이 발표한 방위 지침은 MDT 제4조의 적용 범위를 "남중국해 어디서든(Anywhere in the South China Sea)"으로 명확히 하고, 공격 대상에 "해경선(Coast Guard vessels)"을 명시적으로 포함시켰다. 이는 중국이 해경선을 이용한 공격을 가할 경우에도 미군이 개입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 것으로, 중국의 오판을 방지하기 위한 전략적 조치이다.


6. 자원 전쟁: 에너지 안보와 어업권

남중국해 분쟁의 이면에는 필리핀의 생존이 걸린 에너지와 식량 안보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6.1 말람파야 가스전 고갈과 렉토 뱅크(Recto Bank)의 딜레마

필리핀 루손 섬 전력의 약 20%를 공급하는 말람파야(Malampaya) 가스전은 2027년경 고갈될 위기에 처해 있다. 필리핀 정부는 대체 자원 확보가 시급하며, 가장 유력한 후보지는 렉토 뱅크(Reed Bank)이다. 렉토 뱅크는 필리핀 EEZ 내에 있으나 중국의 구단선 내에도 포함되어 있어, 2014년 이후 중국 해경의 방해로 탐사 작업이 사실상 중단된 상태이다.

6.2 공동 탐사 협상의 헌법적 교착

에너지 위기가 임박함에 따라 필리핀은 중국과의 공동 탐사(Joint Exploration) 가능성을 모색해왔다. 엔리케 마날로 외무장관은 2025년 2월 "법적 조건이 충족된다면 대화에 열려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양측의 입장은 좁혀지지 않고 있다.

  • 필리핀의 헌법: 필리핀 헌법과 대법원 판결(2023년 JMSU 위헌 판결)은 천연자원 개발에 있어 국가가 60% 이상의 지분을 보유하고 '완전한 통제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 중국의 요구: 중국은 '주권 유보, 공동 개발' 원칙을 내세우며 필리핀의 국내법 적용을 거부하고, 사실상의 주권 공유를 요구한다.

  • 미국의 개입 가능성: 최근 미국 에너지 기업들이 필리핀 심해 가스전 개발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보도는 이 경제적 문제가 미-중 갈등의 또 다른 전선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6.3 어업권과 해양 환경 파괴

남중국해는 필리핀 어획량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중요한 어장이다. 그러나 중국 해경의 조업 방해로 인해 필리핀 어민들은 스카버러 암초 등 전통적 어장에서 쫓겨나고 있다. 2016년 PCA 판결은 중국의 대규모 산호초 채취와 인공섬 건설이 해양 환경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다고 명시했다. 최근 중국이 사비나 암초 인근에서 쇄석된 산호 조각을 쌓아 올리는 행위는 생태계 파괴를 통한 영토 확장의 전형적인 사례로 비판받고 있다.


7. 외교적 전장: ASEAN과 내부 정치

7.1 ASEAN의 무력증과 2025-2026년 의장국 변수

남중국해 문제 해결을 위한 다자간 프레임워크인 ASEAN은 회원국 간의 이해관계 충돌로 인해 효과적인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

  • 말레이시아 의장국 (2025년): 2025년 의장국인 말레이시아는 중국과의 경제적 관계를 고려하여 "조용한 외교"를 선호한다. 안와르 이브라힘 총리는 남중국해 행동강령(COC) 협상의 조기 타결을 추진하고 있으나, 중국의 지연 전술과 회원국 간 이견으로 인해 실질적 진전은 어려운 상황이다.

  • 필리핀 의장국 (2026년): 2026년 의장국을 수임하는 필리핀은 남중국해 문제를 ASEAN의 최우선 의제로 설정하고 중국을 강하게 압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2026년이 외교적 갈등의 정점이 될 수 있음을 예고한다.

7.2 필리핀 국내 정치와 중국의 영향력 공작

마르코스 대통령의 강경 대중 정책은 국내적으로 높은 지지를 받고 있지만, 친중 성향의 두테르테 가문과의 정치적 연대는 붕괴되었다. 중국은 이러한 필리핀의 정치적 분열을 틈타 '통일전선공작(United Front Work)'을 강화하고 있다. 가짜 뉴스 유포, 친중 여론 조성, 정치인 포섭 등을 통해 마르코스 정부의 외교 정책을 내부로부터 흔들려는 시도가 지속되고 있다.


8. 2026년 전망 및 결론

8.1 시나리오: 통제된 불안정과 우발적 충돌의 위험

2026년 남중국해 정세는 "통제된 불안정(Controlled Instability)"이 지속되는 가운데 우발적 충돌의 위험이 상존할 것이다.

  • 중국의 전략: 중국은 미국의 직접 개입을 피하기 위해 '무력 공격'의 임계점 바로 아래에서 강압 수위를 조절할 것이다. 해경과 민병대를 이용한 '회색지대 전술'은 더욱 정교해질 것이며, 사비나 암초나 샌디 케이(Sandy Cay)와 같은 새로운 지형물에 대한 점진적 잠식(Creeping Annexation)을 시도할 것이다.

  • 필리핀의 대응: 필리핀은 타이폰 시스템 도입, 동맹 네트워크 강화를 통해 억지력을 높이는 한편, 렉토 뱅크 등 자원 개발을 위한 독자적 행보를 강행할 가능성이 있다.

8.2 미국의 변수: 트럼프 2.0의 불확실성

2025년 이후 가장 큰 변수는 미국의 정치적 지형 변화다. 도널드 트럼프의 재집권 가능성이나 미국의 고립주의 경향 심화는 필리핀에게 불안 요소다. 트럼프 행정부가 동맹의 비용을 강조하며 필리핀 지원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일 경우, 중국은 이를 틈타 더욱 과감한 공세를 펼칠 수 있다.

8.3 결론

중국과 필리핀의 남중국해 분쟁은 단순한 영토 문제를 넘어선 복합 위기다. 2016년 PCA 판결은 법적 정의를 확인해주었으나, 이를 집행할 힘의 부재는 국제 질서의 한계를 드러냈다. 마르코스 정부의 '투명성 전략'과 동맹 강화는 중국의 팽창을 억제하는 데 일정 부분 성과를 거두었으나, 동시에 물리적 충돌의 빈도를 높이는 결과를 초래했다.

2026년은 필리핀의 에너지 안보 위기(말람파야 고갈 임박), ASEAN 의장국 수임, 그리고 미국의 전략적 자산(타이폰) 운용이 맞물리는 결정적인 해가 될 것이다. 이 위기를 관리하기 위해서는 필리핀의 끈질긴 저항 의지, 미국의 확고하고 구체적인 안보 공약, 그리고 국제사회의 일관된 법치 지지가 필수적이다. 남중국해는 지금 평화와 분쟁의 얇은 경계선 위에서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다.


부록: 주요 데이터 및 비교

[표 3] 중국과 필리핀의 남중국해 주요 역량 비교 (2025년 추정)

구분중국 (남해함대 및 해경)필리핀 (서부사령부 및 해경)비고
주요 수상함구축함(052D/055형), 호위함 다수호위함(Jose Rizal급), 초계함질적, 양적 격차 극심
해경선12,000톤급(Zhaotou급), 5,000톤급 다수97미터급(Teresa Magbanua급) 2척중국 해경선이 필리핀 해군 함정보다 큼
미사일 전력YJ-18, YJ-12 (초음속 대함미사일)브라모스(BrahMos, 도입 중), 타이폰(미군)필리핀의 비대칭 전력 확보 노력 중
전술회색지대(물대포, 레이저, 민병대)투명성 전략(촬영, 공개), 다자 협력

[표 4] 2023-2025년 주요 충돌 타임라인

일자장소사건 내용비고
2023.02.06세컨드 토마스 암초중국 해경, 필리핀 해경선에 군용 레이저 조사승조원 일시 시력 상실
2023.08.05세컨드 토마스 암초중국 해경, 필리핀 보급선에 물대포 발사
2024.03.05세컨드 토마스 암초물대포 공격으로 필리핀 선박 유리창 파손필리핀 해군 참모총장 탑승
2024.06.17세컨드 토마스 암초중국 요원, 도끼/창 들고 필리핀 보트 강습 및 파괴필리핀 병사 손가락 절단
2024.09.14사비나 암초필리핀 해경선 BRP 테레사 마그바누아 철수5개월 대치 끝에 중국 봉쇄로 철수
2025.12.12사비나 암초 인근중국 해경, 필리핀 어선단에 물대포 난사 및 충돌어선 2척 파손, 어민 3명 부상
2026.01.01남중국해미 해군 USNS 세자르 차베스호, 필리핀 어민 구조미군의 작전 활동 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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